동북아시아 국제개발협력의 지형도: 한·중·일 ODA 전략 비교와 협력 방안
들어가며 국제개발협력의 세계적 지형도에서 한국, 중국, 일본은 각자의 전략과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며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ODA 중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전통적인 ODA 강국으로서 경제적 이익과 외교적 영향력을 연계한 전략적 접근을 취하고 있으며,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원조 모델을 적극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동북아 3국의 개발협력 정책을 면밀히 비교·분석하고, 한국이 효과적인 중견 공여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아울러 한·중·일 3국 간 협력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지역의 공동 번영과 국제사회 기여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한·중·일 ODA 전략 및 비교 일본: 전략적 ODA 강국 일본은 OECD DAC 회원국 중 ODA 규모 3위권에 속하는 전통적 공여국으로, 2023년 기준 약 17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일본 ODA의 가장 큰 특징은 유상원조 비중이 높다는 점입니다. 전체 ODA의 약 60%를 유상원조로 제공하며, 이는 DAC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지역적으로는 아시아에 80% 이상의 원조를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주요 수혜국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ODA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하드웨어 인프라 구축에 중점을 두는 특징을 보입니다.
일본 원조의 핵심 철학은 '열린 국익'이라는 명확한 정책 기조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실익과 외교적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중국: 부상하는 개발협력 강국 중국은 OECD DAC 회원국은 아니지만, 최근 급속히 원조 규모를 확대하며 신흥 공여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공식 통계는 제한적이나,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40-6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의 개발협력은 주로 유상차관 형태로 이루어지며, 일부 연구에 따르면 무상원조보다 유상원조가 약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중국의 원조는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와 긴밀히 연계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인프라 건설, 민간 교류 확대 등을 통한 국제 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자국 국영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의 원조는 경제협력과 상호 이익을 강조하며, 내정 불간섭 원칙을 기반으로 수원국에 정치적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 독특한 경험의 중견 공여국 한국은 2023년 기준 약 31.6억 달러(ODA/GNI 비중 0.16%)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며, OECD DAC 30개 회원국 중 15위권의 중견 공여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양자간 원조는 유상원조 31%, 무상원조 69%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어,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무상원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한국은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5년마다 중점협력국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시아 12개국, 아프리카 7개국, 중남미 4개국, 중동·CIS 4개국 등 총 27개국을 중점협력국으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지역별로는 아시아(60%)와 아프리카(24%) 지역에 원조를 집중하고 있으며,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등이 상위 수원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ODA 중견국가 도전과제 있는 ODA 중견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핵심 도전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 원조 효과성 제고 한국 ODA는 양적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조의 질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유·무상 원조 간 연계성 부족, 비구속성 원조 비율이 66.4%로 DAC 평균(93.5%)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점, 그리고 원조 분절화로 인한 효율성 저하 등이 주요 과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통합적 조정 체계를 강화하고, 비구속성 원조 비율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 지속가능한 ODA 예산 확보 한국은 2025년 ODA 예산을 6.5조원 규모로 확대하며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ODA/GNI 비율 0.16%는 DAC 회원국 평균(0.38%)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ODA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지지를 높이는 한편, 민간 부문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한 재원 다각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합니다.
3. 한국형 ODA 모델 정립 한국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ODA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보건 시스템 구축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를 중심으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합니다.
또한 수원국의 자립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지식공유사업(KSP)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선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중·일 ODA 협력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주요 문제점 지역적 경쟁 구도: 한·중·일 3국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경쟁적 원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원국에서는 원조 중복과 조화(harmonization)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원조 접근법 차이: 일본과 중국은 경제적 이익과 긴밀히 연계된 유상원조 중심의 전략을 펼치는 반면, 한국은 점차 무상원조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 차이로 인해 3국 간 협력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역사 문제: 3국 간에 존재하는 정치·외교적 갈등과 역사적 문제는 개발협력 분야에서의 실질적 협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해결방안 및 협력 모델 3국 ODA 정책대화 플랫폼 구축: 한·중·일 3국 간 정기적인 ODA 정책대화 채널을 구축함으로써 정보 공유와 원조 조화를 위한 체계적인 협의체를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호보완적 삼각협력 모델 개발: 일본의 인프라 구축 경험과 중국의 풍부한 자금력, 그리고 한국의 제도 구축 및 역량강화 노하우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삼각협력 모델을 개발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과제 공동 대응: 기후변화, 팬데믹 대응, 디지털 전환 등 범지구적 공공재 관련 사업에서 3국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넘어선 실질적 협력의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시아 개발협력 모델 공동 연구: 한·중·일 3국의 싱크탱크와 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동아시아 개발협력 모델' 공동 연구를 통해 이론적·실천적 기반을 마련하고, 향후 협력의 토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결론: 한국의 역할과 미래 방향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독특한 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전통적 ODA 접근법과 중국의 경제협력 중심 접근법 사이에서 중재자이자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는 ODA 분야에서도 '틈새 외교'를 통해 3국 협력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각자 다른 개발협력 모델을 가지고 있지만, 상호 협력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대립보다는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국은 국제개발협력의 질적 개선을 통해 중견 공여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한·중·일 3국 협력의 중심축으로서 동북아시아 ODA 협력 체계 구축에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원조 효과성을 넘어, 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OECD 개발협력 한국 동료검토 주요내용 (2024) -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제3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21-2025)」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요 선진공여국의 중점협력국 운영 및 관리체계 사례연구」 - 동아시아연구원, 「일본 인프라 개발협력 이니셔티브: 소다자주의의 포괄적 전략화」 - KOTRA, 한·중·일 3국의 對아시아 경제협력 현황 및 성공사례
이창호 | C2CP 대표컨설턴트 | 2025.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