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글로벌 원조: 트럼프 2.0과 보수 바람이 몰고 온 '원조 종말론'미국발 원조 축소에 OECD 집단 삭감까지... 한국의 선택은?들어가며: 60년 원조 체제의 균열글로벌 국제개발협력 생태계가 1960년대 체제 구축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2.0 행정부의 충격적인 USAID 해체에 이어, OECD 주요 공여국들이 줄줄이 원조예산 삭감을 발표하면서 '원조 종말론'이 현실화되고 있다. 2024년 글로벌 원조(ODA)가 5년 만에 처음으로 7.1% 감소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추가로 9~17% 더 줄어들 전망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까지 글로벌 원조가 최대 25% 감소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왔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라 60년간 지속된 서구 주도 원조 질서의 근본적 해체를 의미한다. 미국發 원조 대지진의 실상트럼프 2기 행정부의 원조 정책은 1기와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 1.0이 'USAID 개혁'이었다면 2.0은 '해체'다. USAID 직원 1만 명을 294명으로, 무려 97% 감축하는 전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구체적 변화는 가혹하다. 2026 회계연도 국무부 예산안을 보면, 양자 글로벌 보건 프로그램은 3분의 2 삭감, HIV/AIDS 지원은 50% 감축, 글로벌펀드·GAVI·WHO에 대한 지원은 전면 중단이다. 아프리카개발은행 양허성 창구 지원도 완전 중단되며, 새천년도전공사(MCC) 예산은 75% 깎였다. 이런 삭감의 비용은 역설적으로 막대하다. USAID 폐쇄 자체에만 64억 달러가 필요하며, 이 중 소송비용만 3억 4,400만 달러에 달한다. '납세자 돈 절약'을 명분으로 한 정책이 오히려 천문학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유럽發 보수 바람의 확산문제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유럽 전역에서 보수정당들이 집권하면서 원조 삭감이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다. 개발정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OECD DAC 10개국이 2025~2027년 원조 삭감을 공식 발표했다. 주요국 삭감 현황: - 독일: 2025년 예산에서 개발협력 예산 대폭 감축
- 영국: 원조예산의 3분의 1을 국방예산으로 전용
- 프랑스: 2025년 재정법에서 개발원조 18% 삭감으로 적자 축소
- 네덜란드: 수십억 달러 규모 원조 삭감
- 핀란드: 2024~2027년 ODA 25% 감축
- 스위스: 원조예산 2억 8,200만 달러 삭감
이들 11개국은 2024년 전체 ODA의 무려 75%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4대 공여국이 지난 10년간 전체 ODA의 3분의 2를 담당했는데, 이들이 1995년 이후 처음으로 동시에 2년 연속 삭감을 단행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주의와 원조 축소의 상관관계이런 변화가 단순한 우연일까? 센터 포 글로벌 개발 연구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원조 규모와 유형은 정부의 정치적 구성에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있다. 보수정당들은 전통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해외원조보다 국내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재 원조 삭감을 주도하는 국가들을 보면 이런 패턴이 뚜렷하다: - 미국: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극대화
- 영국: 보수당 정부의 '국방 우선' 정책
- 이탈리아: 멜로니 극우 정부의 이민·안보 중심 정책
- 네덜란드: 극우 정당 포함 연립정부 출범
- 핀란드: 보수연립정부의 긴축 정책
이들은 공통적으로 '글로벌리즘에 대한 회의', '자국민 우선주의', '재정건전성' 등을 명분으로 원조 삭감을 정당화하고 있다. 글로벌 남반구의 절망적 현실이런 삭감의 직격탄을 맞는 것은 개발도상국들이다. OECD 전망에 따르면: - 최빈국(LDC): 2025년 양자 ODA 13~25% 감소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16~28% 감소
- 보건 분야: 2023년 대비 19~33% 감소
- 인도적 지원: 2023~2025년 21~36% 감소
특히 심각한 것은 보건 분야다. 코로나19로 한때 늘었던 글로벌 보건 지원이 급감하면서, 말라리아·결핵·HIV/AIDS 퇴치 프로그램들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아프리카의 한 보건 관료는 "서구가 약속했던 '아무도 뒤처지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는 구호가 허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분노를 토했다. 다자기구 체제의 동요원조 삭감은 다자개발은행(MDB) 체제도 흔들고 있다. 미국이 아프리카개발은행 양허성 창구(ADF) 지원을 중단하고, 글로벌펀드·GAVI 지원을 전면 중단하면서 이들 기구의 재원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뮌헨안보회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다른 공여국들의 역량이 한계가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나 신개발은행(NDB) 등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서구 주도 체제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의 기회와 딜레마이런 위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은 2024년 39.4억 달러 규모의 ODA를 제공하며 OECD DAC 30개국 중 13위에 올랐다. ODA/GNI 비율도 0.16%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기회: - 리더십 공백 활용: 서구 공여국들의 철수로 생긴 공백을 메우며 중견국 리더십 발휘
- 아시아 허브 역할: 일본의 전통적 접근법과 중국의 경제협력 모델 사이에서 '제3의 길' 제시
- 혁신 모델 개발: K-방역, 디지털 전환, 그린뉴딜 등 한국의 강점을 활용한 차별화된 ODA
극복해야 할 과제: - 규모의 한계: 여전히 미국(640억 달러)이나 독일(280억 달러)에 비해 절대 규모 부족
- 국내 여론: 경제 어려움 속에서 해외원조 확대에 대한 국민적 회의론
- 전문성 부족: 선진 공여국 대비 개발협력 전문 인력과 노하우 부족
한국의 대응 전략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단기 대응 (1-2년): - ODA 예산을 현 수준에서 최소 유지하되, 질적 개선에 집중
- 비구속성 원조 비율을 현재 66.4%에서 80% 이상으로 확대
- 미국이 중단한 글로벌펀드·GAVI 등에 대한 지원 확대 검토
중기 전략 (3-5년): - 2030년까지 ODA/GNI 0.3% 달성으로 중견 공여국 위상 확립
- 한국형 개발금융기구(K-DFI) 설립으로 민간투자 연계 강화
- 아시아개발은행(ADB) 내 영향력 확대를 통한 지역 개발 리더십 구축
장기 비전 (2030년): - '수원국→공여국' 전환 경험을 활용한 글로벌 개발협력 모델 제시
- 중견국 연대체(한국·호주·캐나다·네덜란드 등) 구축으로 집단 리더십 발휘
- 기후변화·디지털 전환 등 신개발 의제에서 선도국 지위 확보
마치며: 위기를 기회로60년간 지속된 서구 주도 원조 체제가 붕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질서 구축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은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로서, 이런 변화의 시대에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서구 공여국들의 철수 속도가 너무 빨라 개발도상국들이 당장 곤경에 처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개발협력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와 유럽 보수주의자들이 만든 위기를 한국이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참조문헌 - OECD (2025). Cuts in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Full Report. OECD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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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2025). 2024년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39.4억불 지원. 외교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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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ex (2025). In 2024, Global Aid Fell for the First Time in Five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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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2024). Foreign Aid in a Time of Right-Wing Populism.
-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2025). Charting the Fallout of Aid Cuts: Which Countries Will be Hit Hardest.
- 국외통일정책연구원 (2025).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개발협력 정책변화와 함의. IFANS 연구보고서.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5).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해외원조 중단이 국제개발협력에 미칠 영향. KIEP 오늘의 세계경제.
- KDI 국제정책대학원 (2025).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해외원조 중단이 국제개발협력에 미칠 영향과 대응방안. EIEC 정책연구.
[그림 1] 출처: AP통신: 극우세력의 약진으로 프랑스 마크롱과 독일 숄츠의 충격적인 패배
이창호 | C2CP 대표컨설턴트 | 202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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